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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미한꿩46 댓글 0건 조회 13회 작성일 2026-08-31 19: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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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Sniper, 狙擊手 스나이퍼)​최근 수정 시각: 2025-02-12 03:41:09namu.wiki분류저격수 영단어인 '스나이퍼'에 대한 내용은 스나이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1. 개요2. 역사2.1. 어원2.2. 17세기 이전2.3. 18세기 ~ 19세기2.4. 20세기3. 양성3.1. 대한민국 국군3.2. 해외4. 저격수에 대응하는 방법5. 저격수의 고충5.1. 아군5.2. 적군5.2.1. 보복5.2.2. 일반 보병으로 위장5.2.3. 자살6. 운용6.1. 군 소속 저격수6.1.1. 특수부대6.1.2. 주요 표적6.1.3. 한계6.2. 경찰 대테러 부대에서의 운용6.2.1. SWAT 등 경찰 대테러 분야7. 사용하는 장비8. 미디어 및 인식9. 저격수인 실존 인물9.1. 전세계 장거리 저격기록​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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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경계 중인 미국 해병대 제1해병사단 7연대 3대대 K중대 저격수 달튼 건더슨 일병. 호비스트가 출판한 스나이퍼 표지로도 쓰인 사진이다.​​'저격'이란 단어는 '화기로 특정 대상을 노려 공격 또는 사살한다'는 뜻으로, 근대 문학에서도 대한민국(조선) 광복군의 활동 묘사를 보면 권총으로 '저격했다'는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시에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표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보통 전쟁터에서 총 맞고 죽는 건 그냥 오다 맞아라, 아니 제발 오지 마라 식으로 뿌리는 총알에 재수없게 맞고 죽는 거라, 제대로 노려서 쏘는 저격이 오히려 특수한 경우다.​하지만 현대에 군사적인 의미의 저격수는 매우 긴 사정거리를 바탕으로한 전문 저격소총으로 무장하여 표적을 암살하거나 파괴, 그리고 아군의 화력을 유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을 뜻한다.[1] 저격수는 일반적으로 보병 전투원과 함께 전선에서 전투하지 않으며[2], 임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인 1~3명으로 저격팀을 만들어 적진에서 독자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이러한 특성상 현대의 전문 저격수는 주로 특수전 부대 소속 요원이다. 특정한 상대를 반드시 노려서 살해해야 하는 무거운 직무 상, 테러 대응 상황, 폭발물 대응 상황, 범죄 상황 등에 어쩔 수 없이 투입되는 최정예 요원이다. 당연히 극한 직업이며, 저격수 본인들도 인간인지라 자퇴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게임에서야 남자의 로망 취급 받는 역할이지만, 게임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는 똥오줌도 싸서 말릴 정도의 극한 악조건이 요구된다고 한다.2. 역사[편집]2.1. 어원[편집]한자狙擊手영어Sniper, Marksman, Sharpshooter[3]프랑스어Tireur d'élite[4]독일어Scharfschütze상당수 언어에서 저격수를 가리키는 말은 영어 Sniper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말의 어원은 스나이프(Snipe)라 불리는 작고 빠르게 나는 데다 움직임이 불규칙하고 색깔마저 쉽게 알아볼 수 없는 도요샛과의 새인데, 이런 작은 새를 엽총으로[6] 쏘아 맞힐 수 있는 사수는 명사수로 불렸다. 전쟁 중 이러한 명사수들이 언론에 주목을 받으면서 '스나이프 쏘기'라는 뜻의 스나이핑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다시 여기서 파생되어 스나이퍼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다. 스나이퍼가 저격수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건 19세기 초부터였다.​이에 대응되는 한국어 단어로는 '저격'과 '저격수'가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것도 저격했다고 표현하며, 이때의 저격과 우리가 생각하는 저격의 사전적 의미는 같다. 하지만, 저격수로 가면 의미가 약간 달라지는데 은폐 진지(隱蔽陣地)에서 적을 저격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로 우리가 아는 뜻과 정확하게 동일해진다.​비슷한 용어로 샤프슈터(Sharpshooter)와 막스맨(Marksman)이 있다. 막스맨은 중세 때부터 존재하던 단어로 직접적인 의미는 표적(mark)을 쏘는 사람(man)'이란 뜻이며 명궁을 의미했다. 샤프슈터는 18세기 미국 독립전쟁 때 미국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로 어원은 독일어로 명사수를 의미하던 Scharfschütze를[7] 영어로 번역차용한 것이다. 당시에는 라이플을 장비하고 장거리에서 저격하는 명사수를 의미하는 단어였다.[8] 이 단어가 영국에도 건너가 나폴레옹 전쟁때 저격병 부대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스나이퍼, 막스맨, 샤프슈터 모두 19세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단어로,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전문 저격수와 보병 부대와 함께 행동하며 장거리 사격을 맡는 경우 지정사수(Designated Marksman)가 딱딱 구별 되던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세 단어 모두 원거리에서 저격하는 명사수를 의미하는 단어로 혼용해서 사용했다.​이 중에 현대 미군에서는 스나이퍼를 전문 저격수를 의미하는 단어로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영향을 받아 스나이퍼가 전문 저격수를 의미하는 식으로 쓰이고 있다. 다른 단어는 미군에서 사격 성적 평가 등급으로 쓰여서 막스맨-샤프슈터-전문가(expert) 순으로 쓰이고 있다.[9] 현대에 지정사수는 저격수와 다른 임무를 맡아 활동하므로 분명히 다른 보직이다. 반면 독일어에서는 Scharfschütze가 지금도 전문 저격수를 의미하듯, 나라에 따라서 반드시 스나이퍼라는 단어만 저격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2.2. 17세기 이전[편집]화약 무기가 발명되기 이전에도 단순히 사람을 노려 쏜다는 의미에서의 저격은 무수히 많이 행해졌다. 원거리에서 죽이는 것은 비록 실패할 확률이 있기는 해도 상당히 은밀하게 암살하는 방법이기도 했고, 투창, 활, 쇠뇌 등 장거리 투사 무기로 적장이나 군관, 기수, 연락병 등 고가치 표적을 노려 쏘는 일은 전장에서는 일상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숙달된 사수만 가능했으며 그것도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특별히 활 잘 쏘는 사람에게 그때그때 저격 임무를 주는 식이었을지언정 저격수라는 보직이 정식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이런 명궁에 대한 전설 혹은 실화들은 수많은 문화권에서 전해내려오며, 대부분 위대한 영웅으로 취급받았다.​사냥감을 잡는 형태의 저격은 화기가 등장한 이후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전장에서 순수히 총기를 이용한 저격의 시초는 대략 16세기경부터 찾아볼 수 있다. 초창기 총의 성능은 현대에 비하면 매우 나빴다. 당시에는 강선과 같은 탄도 안정화 장치도 없고, 탄환 자체도 구형이라 공기저항으로 쉽게 탄도가 제멋대로 변해 유효 사거리가 아닌 최대 사거리가 100m를 넘기기 힘들었다. 흑색화약의 낮은 폭발력으로 인하여 다량의 화약을 사용하느라 플라스크 형태의 화약통을 휴대해야 했으며, 그 폭압을 견디기 위해 총 또한 지나치게 크고 무거워 총기 받침대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마당에 은폐사격은 꿈도 꿀 수 없을 지경이었다. 흑색화약의 폭발 잔여물도 골칫거리였는데, 폭발시 발생하는 잔여물들이 금속을 쉽게 산화시켰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진한 화약 연기 탓에 한두 발 발사 이후에는 바로 앞의 적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심지어 이 당시 화약 총들은 대부분 조준기를 탑재하지 않았다. 간간히 원시적인 조준기가 붙어있는 것도 있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조준기가 달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대개 17세기 이후다. 따라서 종전의 활이나 쇠뇌 등과 마찬가지로 사수를 집단운용하여 면단위 화력 투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10]​그러나 16~17세기 화약무기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지속적으로 개량되었다. 사냥꾼들에게는 한 방에 맹수를 눕힐 수 있는 화약무기가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독일처럼 사냥이 본업인 지역 위주로 사격술이 발달하고, 도처에 사격 클럽이 생겼으며, 다양한 수제 무기들이 길드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기 조선도 임진왜란 이후로 대거 도입한 화승총이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냥꾼들에 의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화승총에 숙련된 사수의 실력은 현대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수준인데, 16세기 사격 클럽의 기록에 따르면, 133명의 사수가 약 180미터 거리에 있는 1미터 정도의 표적에 24발을 쐈는데, 40명 이상의 사수가 20발 이상을 표적에 맞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명중률로 환산하면 약 83.3%로 언뜻 보면 평이한 수준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사격 기록은 강선이 없는 활강 총신 머스킷으로 세운 기록으로, 총의 끔찍할 정도로 낮은 성능을 고려하면 이는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 강선총은 너무 잘 맞아서 적중률이 100%에 달하는 사수가 넘쳐난다!라는 이유로 사격 대회 사용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즉 현대처럼 초장거리에서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의미에서의 저격이라면 당연히 무리지만, 어느 정도 위협적인 명사수는 이 당시부터도 충분히 존재했다. 전쟁에서도 숙련도가 높은 포수들을 뽑아서 보낸 나선정벌의 호포꾼들이 그들의 우수한 사격솜씨로 플린트락 머스킷으로 무장한 러시아군을 관광보낸 적이 있다. 조선의 사냥꾼들은 그 실력이 대단해서 19세기에도 변변찮은 조준장치도 없는 16세기 조총으로 호랑이를 잘만 잡고 다녔고, 분당 2발도 쏘기 힘든 물건으로 분당 4~5발을 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광경을 지켜본 외국인들이 놀라워 하곤 했다.​단순히 레저로서의 사격이 아니라 실전에서의 저격 사례도 엄연히 존재한다.이탈리아 로마의 조각가였던 벤베누토 첼리니는 사코 디 로마 당시 화승총 사수로 복무하면서, 황제군 지휘관인 샤를 3세 드 부르봉 공작을 저격하여 쏘아 죽였다.영국 내전 때에도 왕당파 병사인 존 도잇이 의회파 지휘관인 존 브룩을 장총신 활강 머스킷으로 저격해 사살했다.이베리아 반도 전쟁 당시 영국군 제95 소총연대의 토마스 플렁켓(Thomas Plunket)은 지금으로서도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 500~700여m 떨어진 거리에서 오귀스트 마리 프랑수아 콜베르 샤바네 장군을 저격하고는 다시 그를 도우러 온 부관까지 사살하였다.이시야마 전투 중 오다 노부나가가 사이카슈의 조총수들에게 저격당해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제2차 진주성 전투 중 조선군 지휘관 황진이 시체에 숨은 조총수에게 왼쪽 이마를 저격당해 즉사했다.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이 나오마사 역시 저격당했고 후일 이 부상이 원인이 되어 사망한다.​또한, 통념과 달리 17세기 초중엽부터도 이미 원시적인 강선총(라이플)을 수렵용으로 정식 생산하고 있었다. 각국은 전쟁 시 사냥꾼과 같은 명사수에게 강선총을 지급하여 산병전이나 정찰 등의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스위스, 독일, 스웨덴 등에는 이러한 라이플로 무장한 소수의 정예 부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2.3. 18세기 ~ 19세기[편집]They couldn't hit an elephant at this distance!&quot(BANG)이 정도 거리라면 코끼리를 갖다놔도 못 맞힐 거다!&quot(탕)​- 존 세지윅(John Sedgwick)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북군 육군 6군단장.1864년 5월 9일, 스팟실베이니아 전투에서 북군 육군 보병들이 900야드[11] 밖에 있는 샤프슈터 때문에 벌벌 떨고 있자, 세지윅 장군이 사기를 살리기 위해 몸을 훤히 드러내면서 했던 말. 그런데 당시 남군 육군 저격수는 초월적인 정확성을 자랑하는 휘트워스 소총에[12] 망원조준경까지 사용하고 있었기에, 코끼리도 못 맞히기는커녕 세지웍 장군의 왼눈 아래를 맞춰 즉사시켰다.​본격적으로 저격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대가 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말엽부터이다. 이때의 저격수들은 대부분 숙련된 사냥꾼으로서 주로 정찰과 기습을 수행하는 병력이었다. 독일 지역의 사냥꾼들이 특히 유명했는데, 이들은 후에 독일식 저격기술 발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독일어로 Scharfschütze라는 표현이 저격수들을 지칭하기 위해 쓰인 것은 이 즈음이었으며, 나중에 여기서 유래한 샤프슈터라는 영어가 미국에서 쓰였다가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13] 그들은 매우 뛰어난 사격 기술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괴롭히고는 했으며, 게릴라전에 능했다. 하노버 지역의 사냥꾼들은 하노버가 프랑스에 멸망하자 영국에 고용되어 국왕의 독일군단(Kings German Legion) 소속으로서 많은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또한, 미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정착해야 했던 미국인들은 사냥을 위하여 사격술을 다듬었고, 이는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 전쟁에서 많은 명사수들이 복잡한 지형과 깊은 숲, 그리고 라이플을 이용하여 활동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니얼 모건의 부대소속 저격수 티모시 머피는 새러토가 전투에서 영국군 장군인 사이먼 프레이저와 프랜시스 클라크 준남작을 저격하여 영국군에게 큰 타격을 줬다.​이들의 활약에 호되게 당했던 영국군은 고성능 라이플 개발에 착수하여 베이커 라이플을 소총부대의 제식화기로 도입하였고, 캐나다로 탈출한 왕당파 미국인 등을 중심으로 '라이플 연대'를 편성, 경보병 겸 저격수로 사용하여 나폴레옹 전쟁 반도 전역에서 잘 써먹었다. 유명한 TV 드라마인 샤프 시리즈는 바로 이러한 라이플 부대 중 하나인 제95라이플 연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프랑스도 경보병연대의 활용 가능성을 내다보고 도약병(Voltigeur)과 추격보병(Chasseurs) 같은 여러 경보병 연대를 창설하였다. 이들은 교리상 산병 임무 중 선견대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고 전열보병 역할도 겸해야 했기에 대부분 활강식 머스킷을 사용했으나, 사격술은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전장식 라이플의 문제는 장전속도였다. 강선에 꼭 맞게 탄약을 밀어넣어야 했기에 장전속도가 오래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곧 미니에탄이 발명되면서 장전속도 문제가 사라지자, 대부분의 보병들이 이전 시대에 비하면 저격수 못지 않은 사격술을 연마할 수 있게 되었다. 원거리에서 적 보병의 전열을 노리던 전술은 이제 먹히지 않게 되었고, 저격수는 은폐하지 않으면 살아나기 힘들어졌다. 이 때 많은 저격수들이 일반적인 경보병으로서 척후 임무 위주로 사용되게 되었다.​그러나 후장식 소총이 등장하면서 저격수는 엎드려서 은폐한 채로 적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냥꾼들이 신무기를 이용하여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사냥감을 노리게 된 것이다. 미국의 남북 전쟁이 바로 그 무대로, 당시 남군과 북군 모두 후장식 강선총으로 무장한 샤프슈터 부대를 다수 운용하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 시기에는 전장식 라이플도 여전히 사용되었지만[14], 후장식 라이플의 운용 편의성은 말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장식 소총이 다 죽은 것도 아니었다. 기존의 전장식 소총들은 더 큰 총열을 사용하여 명중률을 한계까지 끌어올렸고, 곧이어 등장한 원시적 형태의 망원 조준경을 이용하여 보병들의 사거리가 닿지 않는 위치에서 정확한 사격을 가했다.​그로 인해 수많은 장교들이 어디서 총알이 날아온 지도 모른 채 죽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위의 세지윅 장군이다. 더는 보병들이 500m 거리에서도 안심할 수 없게 되었고, 저격수는 전장의 공포로 떠올랐다. 특히 남군에는 사냥꾼 출신이 많아 저격수가 대단히 많이 활약했는데, 그 결과 북군의 우세한 물자 보급에도 불구하고 남군과 북군의 교환비는 1:3이었다. 양측의 제식 소총 성능이 엇비슷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전적이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이러한 저격수 전술은 비신사적이라는 이유로 배척받아 잊혀지고 말았다.​전장에서 저격수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전쟁만 끝나면 저격수의 양성은커녕 저격수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매우 흔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 와 같이 저격 자체가 비신사적인 전술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독립전쟁을 예로 들자면 영국군이 너무 강했기에 민병대는 영국군의 장교를 노리는 저격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대해 영국군은 '비신사적인 전술'이라며 미군을 격렬하게 비난했다.[15] 당시 유럽의 전투 양상은 부사관이 통제하는 일렬 횡대의 평민 병사들이 사격을 주고받으며 쓰러지는 동안 귀족 출신의 사관들은 뒤에서 지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한쪽이 전투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귀족 출신의 장교는 가급적 포로로 하고 일부러 죽이지는 않는 것이 서로 당연시되었다. 즉 전투란 어디까지나 평민들이 붉은 피를 흘리며 세력을 겨루는 것이지, 파란 피를 가진 귀족 지휘관들을 죽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16]​다른 예를 들자면, 귀족의 자제에게는 시험 문제를 틀린다거나, 숙제를 안 했다는 등 교육을 받다가 잘못을 범할 경우 매를 대신 맞아주는 평민 아이가 있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지휘관끼리 정정당당하게 지휘력으로 승부를 내지 않고 평민이 귀족 남성을 의미하는 신사를 저격하도록 하는 것은 그야말로 비신사적 행위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걸 듣고 무조건 귀족들이 무책임했다고 성급히 판단할 필요는 없다. 18세기에 영국의 경우는 귀족들의 수는 적었고 신사들이 대부분이었다.[17] 귀족이나 신사도 장교로서 엄연히 해야 할 일이 있었고, 자리에 따라서는 오히려 병사들보다 모범으로 보여야 하기에 선봉으로 앞장서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18세기, 19세기 유럽 전쟁에서는 죽어나간 초급 장교들은 말 그대로 셀 수 없이 많았으며, 장군들조차 여럿 전사하였다.[18]​전열보병 전투가 완전히 사장된 20세기 이후의 현대전에서도 소대장은 소대원들이 지휘사항을 알아먹을 수 있게끔 앞에서 바디 랭귀지까지 섞어가며 “나를 따르라!”를 외쳐야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전쟁 나면 딱 죽기 좋은 위치로 취급된다.[19] 19세기 이전 전투의 특이점이라면, 당시 전투는 장교의 지휘하에 일제사격 및 진형 변환, 착검 돌격 등을 수행했기에 어쩔 수 없이 초급 장교가 전장 한복판에서 병사들처럼 몸을 그대로 노출시킨 상태로 부대를 직접 지휘할 수밖에 없었다.[20]​대체로 이러한 초급장교들은 힘없는 귀족 가문의 출신이고 장교동 하수구 나이도 어렸기에 고급 장교들이 하기 싫은 똥을 치우는 입장이었다. 파란 피로 언급되는 귀족 지휘관들은 대개 고급 장교로서 지휘부에서 망원경으로 전황을 관측하고 명령을 하달했다.[21] 물론 20세기처럼 원거리 통신 기술이 딱히 있는 시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파란 피들의 지휘부도 전선과 가까운 편이었다. 그래서 이들도 눈 먼 총알이나 포탄에 맞아죽고, 저격수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적군 입장에선 초급 장교 저격에 성공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후방에나 있을 요인인 고급 장교 저격에 성공한다면 대박 중의 대박이다.​이런 생각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서서히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남아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은 물론, 6.25 전쟁 같은 경우에도 전쟁시에만 저격수 양성과 저격 소총의 발전이 이루어지다가, 전쟁이 끝나면 저격수 자체가 사라지는 현상이 영국과 미국 육군에서 흔하게 발생하게 된다.[22]​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병들에게 적군 장교 사살 금지 같은 명령이 내려진 것도 아니었고, 장교 또한 사병들 사이에서 전열을 이끄는 이상 굳이 노리고 쏜 게 아닌 총탄이 장교를 맞추거나, 백병전의 정신없는 와중 장교건 뭐건 군복 색 다른 것들이 보이면 보이는 족족 찌르고 베다 보니 장교를 썰어버리거나 아예 자국 귀족 장교에 대한 분노를 풀 겸 같은 귀족인 적 장교를 대놓고 노리고 공격하는 일도 많아, 사병의 손에 죽은 장교들은 정말 많았다. 혼전을 틈타 일부러 평소 증오하던 아군 장교를 슬적 죽여 버리는 경우도 꽤 됐으니, 적 장교는 말할 것도 없다.​이와는 대조적으로 독일군의 경우, 19세기에도 산악지대의 사냥꾼 출신 병사들을 중심으로 저격수들을 잘 활용하였다. 그들의 저격술은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배척받을 일이 적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독일어의 예거(Jäger)라는 단어는 사냥꾼이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어 정예 병사를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계속 쓰였다. 공수부대를 지칭하는 팔시름예거(Fallschirmjäger)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독일군은 양차대전 당시 저격수의 도입 시기도 빠른 편이고, 전쟁 기간 전반에 걸쳐서 저격수를 많이 활용한 편이었다. 심지어 소련의 저격술 또한 상당수 독소 불가침기에 군사 교류의 일환으로 독일에서 배워간 것들이다.2.4. 20세기[편집]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저격수.[23]​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발달된 자국의 광학 기술과 예거 운영의 노하우를 통해 본격적으로 저격수를 투입,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독일의 저격수들은 매우 뛰어났는데, 그들은 사격술뿐만 아니라 은폐에도 능하여 여러 가짜 진지를 만드는 수법으로 연합국 저격수들을 농락하고는 했다. 초기 연합국의 저격수는 이름뿐인 저격수로서 일반 보병과 동일한 수준이었고, 손쉽게 이들의 먹이가 되었다. 결국 독일의 저격수들에게 대항하고자 연합국도 체계적인 저격수를 양성하게 되었고, 전쟁 중에 많은 저격 기술들을 발전시켰다. 영국은 스코틀랜드의 수렵 몰이꾼들을 활용하여 저격수를 양성하였고, 또한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출신의 총에 익숙한 사냥꾼들이 대거 입대하면서 저격수의 자원도 늘어났고, 저격수 훈련법도 개선되었다.[24]​1차 세계대전 당시 저격수는 병사들의 만성적인 수면 부족의 원인이던 경계 근무와 각종 노역, 위험한 정찰 활동과 일제 돌격에서 면제되는 등의 혜택을 보통 받았다. 하지만 이를 부러워하는 병사들은 거의 없었는데, 저격수는 보통 동틀 무렵 참호 위로 올라가 하루종일 무인지대를 기어다니며 임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이다.​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란 비난 등으로 인해 연합국은 다시 전문적인 저격수 훈련 기관을 포기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또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군대에서 배우는 게 전부 사람 죽이는 기술인데 유독 저격만 사람 죽이는 기술로 비난하는 건 현대의 관점에서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21세기 현재 드론 병기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생각해보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전투는 가시거리 내에서 벌어지는게 보편적이었는데, 저격은 그 범위를 넘어서 일방적인 살상이 가능한 기술로 여겨졌기 때문이다.​겨울전쟁 당시 핀란드군의 저격수 ‘백색 사신’ 시모 해위해.​위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 저격수, 아래쪽은 소련군 저격수. 오토 카리우스의 회고록인 '진흙 속의 호랑이'에서 그는 일부 소련군 저격수가 방탄복을 입는다고 언급했다.​소련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전간기에는 독일과 소련이 서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식 저격 기술이 군사 교류로 소련으로 흘러들어가 기본적인 저격전의 체계가 잡힌다. 그 후 겨울전쟁에서 핀란드군의 저격수에 의해 소련군이 호되게 당하며 저격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에 소련군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대규모 저격수 부대를 편성해 운영하게 되었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이라 불리는 시가전이란 특수한 환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소련의 저격수들은 나치 독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25] 상당수가 소련식 영웅 만들기에 의해 전과가 부풀려지기도 했지만[26], 그들의 활약은 독일군을 질리게 만들기 충분했다.​영국군도 1차대전 때의 저격수 양성 코스를 부활시켜 아프리카 전선이나 서유럽 전선에서 적군 주요 표적 사살, 독일 저격수의 대항마, 특수부대 등으로 널리 투입했다.​그러나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의 교훈을 잊은 터라 전문적인 저격수가 존재하지 않았고, 지정사수 체제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미 해병대는 태평양 전쟁의 정글에서 숙련된 일본의 저격수[27]들에 대항하기 위해 저격수 양성을 시작했고, 특유의 정찰저격병 교리를 정립했고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계속 유지했다. 이들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도[28] 활약했고, 그러한 역사는 21세기까지도 이어오고 있으며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힌 무스타파라는 반군 저격수를 해치운게 미 해병대 소속 정찰저격수였다.​한편 미 육군은 다른 선택을 했다. 이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내내 물량과 M1 개런드, M1918 브라우닝이라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공세적인 위치에 있었기에, 전문 저격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이는 베트남전쟁까지 이어졌다. 공세적인 위치에서 압도적인 공군력과 포병, 완전 편성된 기계화보병 부대의 확충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다만, 미 육군의 수뇌부들 역시 저격수에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던 건 아니고, 소총중대 평균의 개인 화력과 사격술 향상,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편성된 지정사수를 통해 전문 저격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한국전쟁에서 겪으며 화력은 좋지만 기동력 한계를 느낀 미 육군은 전문 저격수를 양성했고[29], 휴전이 체결된 이후인 1955년에 저격수 학교를 세웠으나, 1년만에 문을 닫았다. 결국 베트남 전쟁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 정글에서의 게릴라전에서 수 많은 장병들이 베트콩 저격수들에 의해 죽어갔고, 전쟁 중에 부랴부랴 저격수 양성 과정을 세워 수요를 충족했다. 미 육군이 본격적으로 저격수 학교를 세운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3. 양성[편집]3.1. ​ 대한민국 국군[편집]​한동안 대한민국은 국군 특수부대와 경찰특공대를 중심으로 저격수를 둘 뿐, 보편적인 부대에서 저격수 양성에 적극적이지 않았는데 보병 분대에 기관총과 기관총 사수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다. 평범한 부대에 저격에 필요한 광학 장비와 저격총을 지급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저격수도 없었다.​그러던 중 제2연평해전에서 해군 고속정 인원들이 북한군 저격수에 의해 저격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했다. 북한군은 분대마다 저격수가 편제되어 있어 분대 화력에서 국군을 위협했다. 한편, 2011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이 대구를 방문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대구 방위를 책임진 육군 제50보병사단과 대구국제공항으로 대통령이 올 경우 공항과 기지를 폐쇄해야 하는 공군 제11전투비행단은 시급하게 대통령 경호를 보조할 저격수를 찾았으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저런 사건과 해프닝이 터지며 북한군보다도 못한 처지여선 안됨을 깨달은 각 군은 뒤늦게 특수부대 외의 부대에도 저격수 양성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병사들 중에서 특등사수들을 뽑아 저격자세와 지식 등 저격에 입문시키는 수준에 그쳤으나 장비가 보급되고 점점 전문화되기 시작했다.​현재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육군 특전사와 해군 특수전전단이 저격수들을 갖추고 있고, 이 외에도 육해공군 부대의 군사경찰특임대, 육군 전방 보병사단 보병대대 저격반[30], 해병대[31] 등에서 지정사수가 아닌 저격수를 전문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계급은 육군을 기준으로 중사 이상이 되어야지 저격수가 될 수 있다.​2011년 시사매거진 2580에 등장한 특전사 707 특임대 소속 저격수들. 707 특임대 대원들의 신상 정보가 2급 기밀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원 문제로 복면을 썼고, 이름도 복자[32] 처리를 했다.​국방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수방사 소속 저격수를 다룬 영상이다. 저격반장 둘이 나온다.##3.2. 해외[편집]현대에 저격으로 상당히 강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국가는 역시 특수작전을 떠나 군사력 또한 최강인 미군, 전통적인 특수작전/저격 강군인 캐나다군, 특수작전의 장로격인 영국군, 캐나다와 비슷하게 유서깊은 소수정예군인 호주군이다. 즉 5개의 눈에 속하는 국가들이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공통점은 현대에도 해외에 꾸준한 군사전개를 통한 실전 경험을 쌓아왔고, 이로 인해 군 내에서 특수작전 분야의 입지가 매우 크다는 것.​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훌륭한 특수작전 분야를 뒷받침할 수 있는, 보병 병과 자체의 전문성이 타국군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매우 탄탄하다는 것이다.[33] 대표적으로 위 5개의 눈 국가들 중에서도 전문성이 가히 탑급인 캐나다군이나 특히 호주군의 경우 타국에서 특수부대는 가야 배울만한 선박CQB와 해상침투, 인질구출, 저격, 직접정밀타격 등을 정규부대 보병들이 전문적으로 이수한다.​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는 혈맹으로 이들은 사실상 미군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들과 활동을 함께 하는데, 그 덕분에 어마어마한 수의 실전 경험과 그에 따른 고급 인력, 체계적인 전술 이론과 노하우를 지속적으로 최신화할 수가 있었다. 당장 전세계 장거리 저격 TOP 10만 보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제외하면 전부 캐나다, 호주, 미국, 영국군 소속이다.​제대로 된 저격수가 양성되는 동안 지원자의 약 3분의 1 이상이 탈락하며, 제대로 된 저격수가 되기 위해서는 위장술, 은밀이동, 관측, 독도법, 통신, 정보 수집, 정밀사격은 반드시 익혀야 한다. 탈락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사격실력 때문이 아니라 은신에 필요한 인내력과 체력, 순간적인 판단력[34]이다. 각 부대에서 최고의 사격실력을 가진 인재들만 모집하다 보니 사격실력은 기본 소양이지만 수십 시간 동안 구르고 또 수십 시간 동안 엎드려 있다가 체력이 방전되고 집중력을 유지하며 극한의 상황 속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는 많지 않다.​여기에 적진에 들어가 활동하는 임무도 있어서 생존술까지 익히기 때문에 관련 훈련을 받은 저격수는 공작원으로 투입할 수도 있으며, 애당초 현대에 그 정도의 전문성을 갖춘 저격수들은 저격수이기 이전에 특수부대 요원이다. 때문에 순수 저격수가 공작원으로 차출되는 레파토리는 꽤 옛날 얘기고, 현대에는 그 반대로 원래부터 선발된 특수요원이 저격 훈련을 이수해 전문성을 갖추면 해당 임무에 투입되는 형식이다. 물론 현대에도 야전부대 소속 저격수들은 많으니 저격수면 무조건 특수부대 요원인 것은 아니다. 저격수는 특기의 특성상, 주로 요인 암살 임무를 맡기 좋다.​미 해병대의 전설적인 저격수, 카를로스 헤스콕은 저격수의 자질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중함'과 '겁'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즉, 용감함을 과시하려 하거나 성급하고 무모한 스타일의 군인은 저격수에 적합하지 않고, 차라리 소심하고 겁이 많아 보일 정도로 매사에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 훨씬 저격수 자격에 부합한다는 뜻이다.​미군의 경우 2001년 제니퍼 도날드슨이라는 여성이 최초로 미군 저격수 학교를 졸업했다. #[35]​하지만 사격 능력이나 잠복 능력은 그렇다쳐도, 앞서 말했듯 저격수는 저격 위치까지 도달하고 거기서 장시간 저격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체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적진 침투가 중요시되고 장거리행군에 필요한 지구력이 필수적인 군대 저격수로서는 남성이 더 선호되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감적수 역할을 할 남성 병사와 함께 장기간 활동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등 여러모로 곤란한 면이 많은 데다가, 포로로 잡혔을 시 처우 문제 등이 남아 있으므로 2차대전 당시 소련처럼 국가가 위태로운 경우이거나 게릴라 등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경우 외에는 정말 엄청난 천재가 아닌 이상 대체로 여성 저격수는 잘 기용되지 않는다. 다만 미국과 같은 선진 서방권에서도 군부에서의 금녀영역들이 풀어지고 있으며, 그렇다고 신체능력 평가를 낮춘다는 게 아니라 여성이라도 기존 남성이 행하던 수준의 신체능력을 유지하고 있다.​당장 러시아도 여성 전투 인력은 2차 대전 이후로는 매우 희귀해졌다. 독소전쟁 당시 무려 309명을 사살한 여성 저격수인 류드밀라 파블리첸코 같은 경우도 있고 대테러 부대 등 몇몇 특수부대에서도 여성 저격수를 두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지구력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시가전이나 대테러전 임무 같은 예외적인 상황일 뿐이다.​디스커버리에서 방영한 미해병대 정찰저격수를 양성하는 스나이퍼 스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 좀 더 디테일한 훈련 방식이 소개된다. 가령 위장에 관한 훈련 부분에서는 정말로 왜 저격병을 찾을 수 없는지 친절히 소개되고 훈련관들도 실전에서 뛴 베테랑들인 만큼 족집게처럼 찾아낸다.​여기에 덧붙이자면 연간 각 부대에서 특등 사수로 선발된 200명의 저격수 후보들이 지원해서 4~6명 정도가 선출된다고 한다. 문제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커트라인이 매우 높은 절대평가로 선출하기 때문에 어떤 기수는 2명밖에 되지 않는 때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저격수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적을 기다리는 인내심,[36] 동물적인 감각, 탄도학에 대한 지식, 적 전술 교리 등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적들이 코 앞에 있더라도 침착하게 대응해야 하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군사학적이거나 기초체력적인 부분은 노력으로 커버가 된다고 해도, 나머지는 정말 순전히 재능의 영역이다.[37]​거기다가 훈련도 매우 빡세다. 아니, 훈련이라기보다는 고문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단적인 예로, 단 5km를 한 시간 동안 동일한 속도로 이동하는 것 등을 훈련이라고 시킨다고 한다. 이쯤 되면 거의 인간이길 포기한 수준이다. 심지어 저게 그냥 괴롭히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로 실전에서 필요한 기술이다. 때문에 저격수들은 그야말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이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탄생하는 최중요 인력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엘리트 특수부대나 저격수는 단순히 지옥주 극기훈련 좀 시킨다고 탄생할 수 있는 싸구려 인력들이 아니다.4. 저격수에 대응하는 방법[편집]저격수라는 개념이 잡혔던 제2차 세계대전부터 현대전까지 저격수를 잡기 위해서 온갖 교리와 방법을 다 시도해봤지만, 결국 자리잡은 것은 저격수가 매복한 것으로 보이는 추정 장소에 대전차로켓, 박격포, 야포, 전차, 근접항공지원, 융단폭격, 소이탄, 항공 폭탄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화력을 동원해서 아예 초토화시켜 그 일대에 개미새끼 한 마리 살려두지 않는 방법이 꾸준히 쓰여왔다.​대표적인 사례로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군 저격수에 골머리를 앓던 소련군이 대대적인 포병사격이라는 대응책을 마련하였고, 실제로 이것이 효과적으로 먹혀들었다. 공포의 상징이었던 시모 해위해도 결국에 포병사격 때문에 크게 다치고 무력화되었다.[38]​또 다른 사례로 제101공수사단이 아프간에서 실제로 겪었던 사건을 다룬 '더 호네츠 네스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참고하자.# 예하 부대 중 일부가 넓은 계곡을 지나가던 도중 강 반대편의 산에서 저격을 받았는데,[39] 이 저격수를 맞이한 미군은 환영 인사로 M-ATV의 M2 중기관총 및 RWS로 초동 대응을 했고, 이를 위해 육군의 화력 자산인 유탄, 박격포와 야포, 심지어 헬기나 항공기의 화력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화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화력으로 그 지형을 거의 뒤집어 엎어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저격수가 사살되었는지 시체를 확인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저격수가 산 중턱쯤에 있으면 그 주변까지 화력으로 싹 뒤집어 엎어버리고, 건물에 있으면 건물을 반쯤 무너뜨리는 식으로 저격수의 공격에 대응하기 때문이다.​단, 저격수가 매복하고 있는 지역에 민간인이나 아군이 위치해 있을 경우엔 화력으로 묻어버리는 방식을 쓸 수 없다. 특히 현대전에선 도시의 수와 면적이 증가하고 인구밀도도 늘어났으며, 불리한 측이 복잡한 도시에서 공격측에게 소모를 강요하는 시가전으로 끌고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민간인과 아군, 적군이 뒤섞여 난전을 벌이기 쉬운 도심에서 이런 초토화 전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헬파이어나 레이저 유도 폭탄 등의 고정밀 병기 외에는 사용이 크게 제한된다. 또한 초토화 전술이 가능한 지역이라 해도 모든 군대가 모든 상황에서 일대를 뒤덮어버리는 수준의 화력 지원을 요청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화력으로 저격수를 묻어버린다 한들 이미 심장에 구멍이 뚫린 아군을 살려낼 수는 없다는 점 때문에 현대에도 저격수의 전술적 가치는 아주 높다.​영화 고지전에서도 저격수의 위치가 파악되자 포병을 호출해 포격을 퍼붓는다. 오직 한 명의 적을 위해 포병까지 호출해 막대한 화력을 때려부을 정도로 저격수의 처리는 크나큰 문제다.​상대에게 장교동 하수구 발각된 저격수는 후퇴하고 싶어도 화력도 빈약해서 추격을 저지하기도 어렵고 이동수단이라고는 두 다리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40] 시간이 지나 본격적인 보병의 정찰 자산까지 동원되면 그야말로 죽은 목숨. 그럼에도 살아남은 저격수들의 일화가 존재하긴 하지만 수일 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하수구를 기어서 도망치거나 목숨을 걸고 절벽을 타거나 하며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등 정말 처절한 사례가 대부분이다.​화력 투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차선책으로 아군 지정 사수나 아군 저격수를 동원하여 인력으로 적 저격수를 탐색하고 사살하는 것인데, 위험하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적 저격수 한 명 때문에 대규모 보병 부대가 꼼짝도 못 하고 발이 묶여버리는 상황은 현대전에서 매우 골치 아픈 상황 중 하나. 적 저격수를 무력화했다고 해도 전선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적 저격수를 찾아 포로로 잡거나 시체를 직접 확인하는 것도 위험하고 어려워서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 적 저격수 잡으려고 아군 저격수 불렀는데 아군 저격수가 저격 당하지만 않아도 다행일 정도로 말 그대로 엄청나게 골치 아픈 적. 일반적으로 저격수간의 대치 상황에선 미리 상대방의 역저격수가 투입될 거까지 고려하고 위치와 진입, 탈출 경로를 미리 세팅해둔 선저격수쪽이 더 유리한 편이다. 따라서 저격수를 잡겠다고 아군 저격수를 불러오는 건 아예 화력으로 저격수가 있는 일대를 묻어버리는 것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더 비효율적이다.​그러나 저격수가 있을 법한 위치를 온갖 화력을 동원해서 갈아엎는 건 이라크 반군, 아프간 탈레반 따위 약소국의 비정규군을 상대로 싸우는 미군 같이 애초에 전력 자체가 압도적으로 우월하지 않으면 항상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미군도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문제만 생기면 첨단 무기를 동원한 화력(=돈))으로 갈아 엎는 방식으로 싸우다 베트남전 때는 아예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때는 미증유의 세계적 경제 위기란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고, 미국 vs 중동 테러리스트/반군 같은 일방적인 형세가 아니면 애초에 사용하기도 힘들다.[41] 비슷한 체급, 국력의 두 교전 상대 사이에서 지엽적인 전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거리 중화기를 몰빵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다른 전선에서 공백이 생긴다. 냉정하게 전술적 가치만 따지고 보자면, 단 한 명의 저격수를 잡기 위해 폭격이 동원된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크게 보면 이득이나 다름 없다. 이렇기 때문에 바로 미군 장본인들도 그렇고, 다른 나라들은 여전히 일방적인 화력으로 공간 전체를 제압하는 것 다음으로 적 저격수에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인 역저격을 저격수 훈련 과정에서 크게 강조한다.​이라크에서 주바라는 저격수가 악명을 떨치자 미국은 저격수 사냥하려고 대규모 카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미군의 저격수 사냥은 그야말로 치밀했는데 장비 면에서는 일선 부대에 '부메랑'이라고 불리는, 마이크로 총소리를 감지해 거기서 저격수의 거리와 방향을 역산하여 추적한 다음 음성으로 알려주는 험비용 경보장치를 2000대나 보급하였다. 이 부메랑으로 저격수의 위치를 추적하기가 쉬워서 찾아내어 족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특수부대와 공군으로 저항군 저격수의 지휘·보급조직 및 교육시설을 골라내서 타격해 저격수 양성을 저지했다. 또 본토에서 CSI팀을 실어와 1800건의 저격 피해 현장을 분석하여 저격수 용의자 150명의 생체 신원을 추출하여 추적하는 한편 이라크 주민들에게 현상금을 내걸어 협조를 받았다. 미군이 사살한 저격수 3명의 경우 숨어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에 C-130으로 현상금을 건 전단지 백만 장을 뿌렸다. 그 결과 현상금을 타내려고 이라크 경찰서에 전단지를 들고 신고하러 온 주민들이 쇄도했다. 주민들의 신고를 바탕으로 저격수 3명은 은신처가 들통 나 미군에게 전부 사살되었다. 또한 직접적인 카운터 스나이핑 작전 역시 2007년에 최고조에 달해 300건의 반군 저격수 공격을 침묵시켰다. 이에 따라 반군 저격수들은 미군에게 걸리는 족족 살해당했다. 저격수를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충원되는 속도가 사살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어 이듬해에는 반군 저격 건수가 2/3로 줄어들었으며, 2009년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42] 많은 사람들은 주바가 실존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간에 전사했으리라 간주한다. #5. 저격수의 고충[편집]5.1. 아군[편집]내가 처리한 적 저격수 하나마다 아군 목숨 몇이 살아났다. 하지만 그 살아난 놈들 중 이걸 아는 놈은 별로 없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어느 저격수의 회고록​저격수들은 임무 특성상 많아야 두 세 명의 인원으로 단독행동을 하는 일이 많아 배타적이고, 고립주의 또는 개인주의, 금욕주의적인 성격이 많았기에 일반 병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임무 스트레스도 심해서 2차 대전 중의 많은 수의 저격수들이 일반병으로 보직 변경을 신청한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는 같은 아군조차 적 저격수의 공포는 알지만 아군 저격수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폭언을 행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로 활동했던 사람들이 정신적인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말 그대로 현시창. 예로 카를로스 헤스콕이 있다. 저격수는 타겟이 확실히 제거될 때까지 표적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즉, 적의 신체가 꿰뚫리고 유혈이 낭자하는 장면을 끝까지 그것도 스코프를 통해 생생히 지켜본다. 정신이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하지만 이렇게 고통받는 부류가 있었는가 하면 오히려 자신에게 오는 아군들의 비난과 조롱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는데, 한 예로 2차대전 때의 한 저격수는 원주민 혼혈이라 동료들에게 적을 죽이고 머리 가죽을 벗겨올 거냐고 조롱당했는데, 진짜로 벗겨왔다.(...)는 일화가 있다.​보통 보병들은 자신들의 살상 행위가 자신과 동료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라 믿고 합리화하는데, 누군가가 다른 인간을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쫓듯 추적하고 죽인다면 어떨까?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누구는 포탄과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고 시체와 팔다리가 굴러다니는 그 아수라장에서 죽어라고 아등바등 구르는데, 저격수란 작자들은 저 뒤에서 편하게&quot숨어서 안전하게&quot총알이나 날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다. 현대에서도 이 기믹은 여전한데 친숙한 게임인 스타크래프트2의 야전교범(스타크래프트 2)의 유령 항목을 보면, '해병 등 뒤에 말입니다'라는 낙서가 있다. 즉, 해병을 고기방패 삼아 뒤에서 편하게 싸운다는 해병들의 애환.​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도 이런 인식을 엿볼수 있는데, 주인공이 꽤 전장에 익숙해진 고참병인데도 적군과 육박전을 벌여 죽인 뒤 공황에 빠지는 장면이 있다. 적의 시신과 온갖 번민을 하며 하룻밤을 보내고 복귀한 주인공이 부대에서 처음 본 게 저격수들인데, 적군을 사냥하듯이 사살 수를 경쟁하며 낄낄대는 저격수들을 방금까지 별별 생각을 하던 주인공과 대비시킨다.​물론 위의 훈련 과정을 읽고 왔으면 저격수들이 절대로 편하게&quot숨어 있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알겠지만,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보살일 것이다.[43] 물론 그 정도로 저격수 임무에 대한 이해가 높고 정신적인 여유가 있다면, 해당 병사는 행보관이나 중대장의 눈에 띄어 차출될 가능성이 높다.(...)​그 외에도 1차 세계대전 때부터 아군 저격수가 있는 참호는 적의 집중 포격 대상[44]이 되기 때문에 주변의 아군까지 큰 피해를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아군 저격수를 미워하게 된다. 1914년 영국의 한 저격수는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아군 병사들의 야유에 직면했고, 이에 빡돌아서 근처에 있는 죽은 소의 배를 대검으로 갈라버렸다. 그 악취는 참호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아군을 끔찍하게 괴롭혔다.​여기에는 1차 대전까지는 아직 신사도나 기사도 운운하는 데다 정면 대결이 진리라는 풍조가 유럽 각국에 잔재해 있었기 때문에 저격수에 대해 '비겁하게 숨어서 사람이나 사냥하는 살인마'같은 은근한 경멸 의식이 병사들 사이에서 강했던 것도 한몫했다.[45]​그나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저격수로 상대방 저격수를 상대할 수 있으며, 시야가 밝고 적의 눈에 띄지 않게 이동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살려 정찰 등의 다른 목적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일반 병사들에게도 알려지면서 악평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독소전쟁의 소련, 혹은 1943년 여름 이후 소련에서 패퇴하는 독일군 같은 경우에는 후퇴하면서 저격수에게 후방 보호 및 한 명이라도 적을 더 사살하고 전사하라는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일반 병사들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평가가 올라가기도 했다.​이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저격수를 대상으로 한 인식도 '그나마'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앞서 설명했듯이 저격수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크게 증대되어 이젠 전문적으로 저격수를 양성하고 있기 때문. 물론 경찰 소속 저격수들은 애초에 소속이 경찰이기에 이런 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경찰 소속 저격수들의 수요처는 사실상 SWAT이 유일한데, 이들은 인질 구출과 같이 명백한 테러를 대상으로 움직이므로 오히려 좋게 평가하면 좋게 평가했지,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다. 또한 실전 투입이 잦은 군대의 군 저격수의 경우도 타 병과들에게 저격수 훈련과 임무가 힘든 것이 서서히 알려지는 것과 그들이 버티고 있을수록 아군이 더 많이 살아 나가기 때문에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46]5.2. 적군[편집]저격수의 표적이 되어 동료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대로 쓰러질 때마다,[47] 그걸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본 병사들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다. 하다못해 게임만 해 봐도 적 팀에 실력자 저격수가 하나라도 있으면 아군이 옴싹달싹 못하며 주춤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탈레반 저격수의 사격에 당황하는 미군들.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이는 절대 미군이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 정도로 저격수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미군의 막강함은 그 다음 대처에 있는데, 탈레반 저격수에 대응해 미군은 아예 저격수가 있을 법한 위치를 통째로 밀어버리는 폭격으로 이 상황을 극복했다.​저격수 증오는 전장 안의 저격수의 역할과 그 운용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것처럼 적군을 더 많이 사살하기 위해 적을 한 번에 죽이지 않고, 팔이나 다리 등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없으면 전투수행을 못 하는 부분을 노려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가 있겠다. 이러한 전법은 간부/통신병 저격과 함께 적을 무력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저격 전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일단 부상만 유도할뿐이니 살인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도 줄일 수 있고, 저격당한 동료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구하려 드는 적병, 혹은 격분해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적을 쉽게 노릴 수 있으며, 적이 바로 연막탄을 뿌리고 후퇴한다든가 해서 다른 적을 못 쏜다고 해도 부상병이 생긴다면 부상병을 안전한 곳으로 호송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전투 가능 인원이 빠져야 하니 그것도 득이다. 보통 거동이 불가능한 병사는 동료 2명 이상이 이동시키니 결론적으로 한 발로 최소 3명 이상의 전투력이 전선에서 빠지는 셈이기 때문이다.[48] 당연하게도 적군 입장에서는 방금 전까지 곁에서 걷고 있던 전우를 안전하게/비겁하게 멀리서&quot불구로 만들어버린 것도 모자라 그 목숨까지 도구로 쓰거나 미끼로 걸면서 도발해 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상대가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논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저격수에 대한 증오심이 증폭되는 것 역시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기에 실제 전장에서 이런 전투법을 활용하면 일반 병사 입장에선 사람만도 못한 괴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하지만 반대로 저격수의 경우 지금 당장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상황에 놓여있지 않고,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멀리서 적을 관찰하기에 오히려 적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게다가 표적을 보면서 저 자 또한 인간이고 누군가의 친구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총을 부숴버리고 적에게 투항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유달리 다른 무기를 다루는 사람보다 저격수에 대한 증오가 전장에서는 상당히 많다. 분대지원사수나 기관총 사수, 지정사수, 화염방사병 급으로 미운 건 기본이고, 심하면 융단폭격을 퍼붓는 폭격기 조종사나 적국 지도자, 핵무기 발사 권한을 가진 통수권자조차 능가할 수준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응도 매우 심한 편인데, 저격수를 포로로 잡으면 그야말로 끔찍한 대우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이는 저격수가 일반 병사들과 다른 훈련을 하고 별도로 행동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격수끼리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그보다는 사냥감처럼 사냥당하는 느낌 + 자신만을 노리고 정조준하는 명백한 적의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전쟁에서 일반적인 싸움은 서로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고, 더 큰 전투에서는 서로가 누굴 쏘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재수 없으면 눈먼 총알에 맞는 것이지만 저격은 저격수가 훨씬 더 안전한 곳에서 자신을 확실히 노리고 쏘는 공격이기 때문에 비겁하다고 여기며,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일반 소총수는 2만 5천 발을 쐈을 때 적을 한 명 사살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저격수는 1.7발로 적 한 명을 사살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직관적으로 말해서 일반 병사는 마구잡이로 쏘면서 누구든지 맞기 싫으면 물러나거나 아무나 죽어라는 식의 견제로 총을 쏘는 것에 반해 저격수는 누군가를 확실히 정해서 죽일 목적으로 쏜다는 것이다.​심지어 소총수들끼리 적이 보임에도 일부러 위협사격만으로 그치거나 오발탄을 마구잡이로 쏴서 적의 후퇴를 강요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사람을 죽이고 싶지도, 자신이 죽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격수는 철저히 특정 목표를 정해 적을 단발에 사살한다. 이 점은 적에게 명백한 공포와 악의를 느끼게 한다. 심지어 아군들에게까지도.​풀 메탈 재킷에서는 저격수에 대한 공포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아군이 하나 둘 픽픽 쓰러져가는 공포를 말이다. 심지어 저격에 맞아 빈사가 된 아군을 끌고 오려는 전우애까지 응용해 저격한다. 하지만 그 저격수의 정체는... 일행은 희생 끝에 끝내 저격수를 찾아내 사살하기로 결정한다.[49]5.2.1. 보복[편집]실제로는 적군에게 잡혀서 비참하게 죽는 저격수의 숫자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위에서 서술했듯 저격수를 확실히 제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그 일대를 싸그리 쑥대밭으로 만드는 방법 뿐이고, 당연히 저격수 역시 잿더미가 되어 보복은 커녕 시체 조각 찾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씩 불운하게도 포격을 받고 살아남았지만 부상을 당해 후퇴가 불가능한 상황 등에서 자신이 저격수임을 파악당한 채 붙잡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그 저격수가 편한 죽음을 맞이할 확률은 없다. 만약 저격수가 생포되면 병사들의 공포가 비겁하게 숨어서 공격한다는 이유로 극렬한 분노로 바뀌고, 그로 인해 해당 저격수는 포로가 되지 않고 바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때론 즉결처형을 당하는 것도 관대한 처분인 경우도 있었다.​제2차 세계 대전 때 다른 독일 저격수는 탄약이 떨어지자 총을 창 밖으로 던지고 항복했으나, 자신의 부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아는 영국군 장교가 그 자리에서 권총으로 쏴 버렸다.[50]​저격수는 군사재판에 보내지 않는다. 최소한 투항이라도 받아줬던 일반 보병과는 달리 전쟁이 치열해지면 저격수만큼은 그 자리에서 사살시킨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연합국도 마찬가지였고 추축국도 다 똑같았다.​머리나 가슴에 총알을 박아 즉결 총살을 하거나 목을 매달아버리는 것은 관대한 처분이요, 온 몸이 부서지도록 개머리판과 몽둥이, 군홧발로 두들겨 패서 죽이는 것부터 총검으로 마구잡이로 난도질해 죽이기, 군의관이나 의무병이 메스나 총검으로 산채로 해부하기, 탱크로 깔아뭉개 으스러뜨려 죽이는 것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갖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잔인하게 죽였다고 한다. 심한 경우엔 손이나 발을 묶은 후 트럭으로 끌고 가거나 포박한 뒤 휘발유를 끼얹고 불태워 죽여버리기도 했다.​특히 소련 같은 여성 저격수를 운용했던 국가의 여성 저격수는 끔찍한 능욕을 당하고 처절하게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여성 저격수는 자살용 수류탄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 실제로 사용해서 자신을 포위한 적까지 다 죽일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게다가 당시 독일군은 소련의 여성 저격수들을 여자가 아닌 중성의 마녀들이라고 선전하며 참혹하게 죽일 것을 일선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10대 여성 저격수들이 독일군에게 사로잡히면 마구잡이로 능욕하고 20세기의 전장에서 중세 마녀사냥처럼 저격수를 끔찍하게 죽인 뒤[51] 과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저격수 거리'의 모습.저격수의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시민들은 맞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달아나고 있다.사라예보 포위전에서 세르비아 저격수들은 평화롭게 시가지를 걸어가는 시민들과 이들을 보호하는 UN 평화유지군까지 마치 사냥이라도 하는 듯 공격했는데, 이런 경우에는 전쟁범죄 및 공무집행방해까지 가미되어서 토벌을 당했고, 시민들과 UN 평화유지군 측에게 온갖 조리돌림을 당한 뒤 자신들의 죄에 걸맞게 거리에 훼손된 시신 그대로 목매달아지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52]​이처럼 저격수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육군의 개X끼'조지 S. 패튼이나 '석기시대 성애자'커티스 르메이 같이 불같은 성격을 가진 장군은 물론이고, 온화한 성품으로 유명한 오마 브래들리도 적 저격수를 보통보다 더욱 거칠게 다루는 것을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quot라고 언급한 바 장교동 하수구 있다. 반대로 저격수는 적에게 포로로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저격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몰래 스코프를 버리기도 하는 등, 살기 위해서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5.2.2. 일반 보병으로 위장[편집]저격수 입장에서 후퇴가 불가능할 정도로 궁지에 몰릴 경우, 망원조준경을 소총에서 분리하여 멀리 버린 다음 항복해서 마치 자기가 저격수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이나, 근처 아군 전사자의 시체에서 일반 소총을 주워 쓰는 일이 있었다. 당시의 저격수 교리에도 있었던 내용이며, 특히 게베어 43의 경우 망원조준경에 탄창까지 제거하면 당시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던 평범한 소총과 외관상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53] 이 방법을 쓰기 쉬웠다. 독일의 Kar98k는 보병용, 저격용 상관 없이 노리쇠가 90도 꺾여있고, 영국의 리-엔필드는 노리쇠가 꺾여있지는 않지만 구조상 스코프가 영향받지 않아 일반용과 저격용이 같다.[54]​또한 저격수가 일반 보병인 것처럼 위장하고 다니면 자신이 이 사람이 저격수로 자신의 아군을 저격한 것을 봤을 때에나 이 사람이 저격수인 걸 알 수 있지만, 불행히도 저격수들은 앞에 말했다시피 은엄폐를 잘하고 다녀서 보이지도 않았으려니와, 저 멀리 최소 500m에서 최대 2km의 거리해서 저격을 시도했을 텐데 일반 사람의 시력으로 볼 수 없고 또한 식별은 더더욱 힘들다. 그 거리에 숨어있는 사람을 식별한다면 당신도 저격수거나, 아니면 저격수를 보조하는 위치에 서 있는 감적수(spotter)일 것이다.[55] 고로 일반 보병으로 위장하고 다니면 당신이 이러한 병과에 속한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이 저격수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 추정에 따라 그냥 일반 병사로 판단하고 포로로 잡는다.​정 급하면 소총째로 숨기고 항복해도 된다. 패퇴하는 군인이 병기를 망실하는 일은 흔하기 때문에[56] 이놈이 저격수라 자기 총 숨겼다고 우기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단, 이 경우 길리 수트 등 저격수임을 나타내는 피복 및 장비들도 전부 숨겨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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