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처한 위기는 오롯이 ‘개인’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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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2024-06-15 21:40:05본문
국제적으로 탈시설과 성년후견 폐지에 온 열정을 다한 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로버트 조지 마틴 위원이 운명을 달리한지 22일 후, 또 한 명의 장애인 권리옹호 활동가이자, 심리사회적 장애인 당사자 사회통합을 위한 단체인 TCI(Transforming Communities for Inclusion)-Global 단체의 바가비 다바르(Bhargavi Darvar) 대표가 우리 곁을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녀는 살아생전 한 장애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심리사회적 장애인들이 겪는 위기는 한 개인이 견뎌내고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의료적 모델에서의 탈피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와 싸우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해결해야 함을 밝혔다(출처: ‘함께걸음’ 2023년 9·10월호 인터뷰). 그러니까 위기란 개인과 사회적 환경·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생김을 그녀는 밝힌 거다.
기후온난화는 요즘 시대의 화두다. 사실 화석연료를 태우며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햇볕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흡수해 대기가 더워진다. 이게 계속되니, 북극 빙하도 많이 녹았고, 전 세계적인 해수면 상승이 발생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기온은 더욱 올라 폭염이 극심한 지경에 이르고 물과 식량 부족, 경제적 손실 등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후 온난화가 기후위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형국인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 됐을 정도다.
우리나라만 해도, 여름에 우리 각자가 냉방에너지를 많이 쓰기도 하지만, 재생에너지 정책으로의 전환 없이, 핵발전 에너지, 화석연료 이용을 장려하는 정책, 여기에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 행태 등과 맞물려 기후 온난화에 기후위기까지 부추기는 게 요즘 상황이다. 이걸 보면, 기후위기는 개인과 정부의 정책, 기업 행태 등이 상호작용한 결과라 봐도 과언이 아닐 터다. 즉 기후위기 해결하려면, 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정부, 기업 등이 합심해야 한다는 거다.
이를 보면, 위기를 해결하는 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이고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청소년복지법’에 보면 "위기청소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위기청소년”이란 가정 문제가 있거나 학업 수행 또는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등 조화롭고 건강한 성장과 생활에 필요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청소년을 말한다. (청소년복지법 제2조 4항)
위기청소년 마음건강 돌봄 프로그램 확대한다는 내용의 여성가족부 포스터. ⓒ여성가족부
이 정의를 보면 청소년이 위기청소년이 된 것은 가정과 청소년 개인에게 원인을 돌리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런데 학업 수행에 어려움울 겪게 된 데는 장애아동·청소년의 경우엔 장애 유형 및 각 개인에 맞는 합리적 변경(Reasonable Accommodation)의 부재와 이를 사실상 부추기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거다. 또한, 장애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학교 내의 문화로 인해 사회 적응이 어려울 수 있는데, 이는 혐오 철폐에 대한 정부 정책의 부재로 인해서 생길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위기청소년 특별지원 내용 중에는 ‘폭력이나 학대 등 위기상황에 있는 청소년에게 필요한 법률상담 및 소송비용의 지원’이란 내용이 나온다. 물론 지원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법률상담과 소송비용을 지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나라에선 입시 위주에 야간학습을 장려하고 얼차려하는 반인권적 문화로 인해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고 이를 푼다는 게 도리어 사회에서 약자인 장애아동·청소년이나 성적 취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걸로 나타난다. 다양성 존중의 실질적 통합교육 체계도 미비한 데다, 학교에 있는 반인권적 군대 문화의 잔재와 장애 혐오 등에서도 그 원인이 있다.
장애아동·청소년 등의 피해자에겐 학교폭력이 상당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기도 해, 이들에겐 정신적 회복을 위해 학교 졸업 후에도 중장기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상담이 필요한 사안이다. 여기에 가해자가 성찰과 반성을 통해 잘못을 깨달아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참회·반성하게끔 하는 교육적 방안 마련도 필요하다. 교육적인 방안으로도 안 되면 사법적 방안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여기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실질적 통합교육 체계 마련과 지역사회에서 장애 혐오를 철폐하는 방안 등을 정부와 지자체, 사회에서 마련해 종합적 관점에서 다가가야 학교폭력으로 인해 생긴 장애 청소년 포함한 위기청소년은 위기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얻게 될 거다.
하지만 그런 것 없이 오로지 법률상담 및 소송비용만 지원하고, 이것도 기껏해야 2년 정도 지원에 그치는 식으로 간다면, 과연 위기청소년이 정신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정신적 위기에서 장기적·근본적으로 벗어나긴 어려울 거다. 물론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음을 말이다. 다양성 혐오 철폐, 교육적 방안 등 사회적 장벽 제거와 환경 개선이 함께 하지 않고선 위기 탈피에 많은 한계가 있음을 말이다.
또한, 위기청소년 특별지원 내용 중에는 ‘취업을 위한 지식ㆍ기술ㆍ기능 등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훈련비의 지원’이라는 것이 나와 있는데, 이것도 기껏해야 2년 정도가 최대 지원기간이다. 이런 지원으로 설령 취업했다 해도, 가부장적·반인권적인 문화에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눈치가 많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직장이 적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선 청소년이 눈치를 챙기지 못했다간 바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기 쉬운 현실이다.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숨기는 마스킹으로 인해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여인 모습. ⓒWikipedia
더군다나 눈치를 챙기기 어려운 특성이 있는 자폐성 장애나 심리사회적 장애가 있는 청소년의 경우엔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특성을 감춰야 하는 마스킹 등의 정신노동을 해야 한다. 이게 장기간 계속되면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심지어 극단적으론 자살 충동에 시달릴 수도 있다. 청소년의 능력 신장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단 말이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위기청소년이 취업해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청소년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거다.
직장에서 청소년 개인의 장애, 성적 지향 등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생성하기 위한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다양성 존중 교육을 훈련 수준으로 직장에서 실시하고 이를 하지 않았을 경우 불이익을 주는 조치 등의 구체적인 정부·지자체 방안이 나오고 이걸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 그렇게 정부·지자체의 사회환경 개선 및 사회장벽 철폐와 청소년 개인의 노력이 함께 할 때 취업을 통해 위기청소년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빛이 나타날 실마리가 보일 거다.
한편, 발달장애인법 얘기로 넘어가면, 발달장애인법엔 제17조 1항에 ‘위기발달장애인쉼터’라는 게 명시돼 있다. 이 쉼터와 관련된 위기발달장애인이란 발달장애인에 대한 유기 등이 발생하였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발달장애인을 그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으로부터 격리하거나 치료할 필요 있는 경우에 처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 사람을 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이 격리, 치료하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실제로 위기발달장애인이 쉼터에서 정신적으로 회복과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머무는 기간은 발달장애인법을 보면, 최대 기껏해야 2주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쉼터의 운영주체는 장애인 거주시설인데, 시설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박탈하는 곳이라 그런 곳에서 쉼터를 운영하는 건 장애 당사자로선 모욕적이다.
설령 쉼터에서 나와도 지역사회의 장애 인식이 천박하고, 인권적 관점에 기반한 서비스들이 부족하거나 부재한 현실에서 위기발달장애인이 폭력이 만연한 가정이나, 자기결정권이 박탈된 시설에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발달장애인이 위기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의도로, 위기발달장애인을 법에서 명시했을 텐데, 법에 장애인과 관련된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자립 지원대책 및 지역사회의 장애인 차별금지 대책 등을 명시하고 이걸 실제로 이행하는 걸 함께 하지 않는 한, 위기발달장애인은 쉼터 입소 전이나 후에도 그저 위기발달장애인일 뿐이다.
결국,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사회 패러다임에서 정부, 지자체가 벗어날 의지, 구체적 대안이 없다면 위기발달장애인이 쉼터에 머무른다고 위기는 사라지지 않으며, 그 이후에도 위기가 계속될 여지는 농후하다. 잠깐의 국가 지원과 대부분의 발달장애인 노력으로 위기 탈피하는 건 한계가 상당하다.
4년 전 학대피해장애인과 위기발달장애인의 임시보호, 심리안정, 피해회복, 사회복귀를 목적으로 설립된 쉼터 ‘보듬’ 개소식 때의 관계자들 및 내빈 모습. ⓒ에이블뉴스 DB
발달장애인 개인 노력만 가지곤 안 된다.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해 시설 예산을 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할 목적의 지역사회 예산으로 전환하는 등의 체계적·구체적·장기적인 국가의 대안이 함께할 때, 위기발달장애인에겐 진정 위기에서 벗어날 실마리가 보일 거다. 위기발달장애인 부분을 보면서 한 개인이 견뎌내고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닌 의료적 모델에서의 탈피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와 싸우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바가비 메시지를 다시금 확인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감당하기 힘든 삶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잠깐 국가, 지자체가 지원하는 거 외엔 지원이 별로 없거나 지원도 충분치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잠깐의 지원 외엔 이들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인권침해 등의 위기가 와도 각자도생하도록 내버려 뒀으며 그런 과정에서 인간다운 삶은 꿈꿀 수도 없었다.
한편으로는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감당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자주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고 실제로 경험하며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정부의 행동계획이 그동안 사실상 부재했었다. 이게 다 위기를 거의 개인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았기에 그랬단 생각이 든다. 그런 관점이 있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되어만 갔다.
새삼스러운 감도 없지 않으나, 이 사회가 위기를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사회의 차별적인 제도와 정책, 법 등 사회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바라보고, 사회환경 개선과 사회장벽 철폐가 개인의 노력과 함께 한다면 위기에 처한 개인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위기를 개인과 사회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야 함과 더불어 이런 관점이 법과 정책, 제도에 잘 반영돼 모든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현실로 다가서게끔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강구해야 하는 게 우리 정부, 지자체, 사회에 시급하고도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그 시점은 지금부터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