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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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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2회 작성일 2024-06-06 14: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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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면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뻔한 소리지만 새로운 4차 산업혁명에 각종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신기술 이슈가 쏟아져 몇 년이면 천지개벽도 할 것인 양 두려움마저 느껴지는 최근에 새롭게 나온 말은 아니다. 생산되는 정보량이 지금보다 한참 적고 느렸을 삶을 살아온 옛날 옛적 사람들도 이런 감상을 느끼고 말을 남긴 것이다.

이건 자폐 특성이나 각종 정신(사회심리)장애 등의 정신과적 진단명에만 한정되어 통할 말은 아니겠지만 자신이 당사자라고 인지하면 참 알고 싶어지는 정보도, 살아갈 사회에 대한 관심도, 말 통하는 사람도 필요해지기 마련이겠다고 오래 생각해왔다.

나 역시 ‘강산이 변할 동안’ 그렇게 인터넷 통신을 활용해 왔다. 이렇게 정신적 장애를 매개로 사람들 사이에 있어 오면서 자연스럽게 마음 한구석에 가져오던 질문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가장 근본적이면서 이번 글의 주제가 되는 '(정신적 장애) 당사자란 무엇일까'였다.

필자는 자폐 특성이 있기에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또래들과, 남들과 뭔가 다른 것 같다는 짐작은 가능했다. 그런데도 그 시절 나는 여느 아이들이 그랬을 것과 다름없이 ‘장애인이란 뭘까’를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장애와 다양성에 대해 내실화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크게 부족했던 결과이며, 그로 인한 앎의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가져서 장애인 등록이 되면 장애인이고, 아니면 비장애인이라고 구분되어 정해지는 거라는 지점을 넘어선 사고를 할 수 있던 건 나 자신이 스스로 장애 정체성을 형성하고 살아가면서 생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보니 ‘강산 한 번 변하기 전의’ 나는 마음속 어딘가가 걸리면서도 장애 정체성을 스스로 형성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정상인’ 보다는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함을 배우게 되면 짚어보니 그게 옳겠다며 납득하고 받아들일 감수성은 가진 천성인 게 그 와중에 다행이었다 할까. 이것이나마 밑거름이 되었으니 지금에 와선 ‘정상’에 대해 의문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렇듯 우리는 장애등록 여부를 일차적으로 장애인 여부의 기준으로 삼고, 그 근거 자료로 의학적 (장애) 진단을 활용한다. 이것은 현재 법적으로, 국가적으로 공식 적용되고 있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가까운 예시로 장애유형과 중증‧경증이 명시된 복지카드를 증빙으로 요구하는 장애인 대상 정책들이 있다.

이는 잘 모르고 본다면 장애 당사자가 차별을 받는 사회적 맥락이나 장애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문제에 비해 명료해 보이며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합리적 타협점이겠다고 납득하고 말 여지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지 살펴보기 위해 곰곰이 떠올려보면 오히려 의료적 기준마저도 법적 장애인 인정과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예시로 장애인등록법 제15조에 과거 명시되어 있던 정신장애인 차별 조항이 삭제될 즈음의 일이 있다. 정신장애에 ‘심하지 않은 장애’ 등급이 신설되며 조현병, 양극성장애, 반복성 우울장애, 조현정동장애 외에도 등록 가능 진단명이 더 추가되었다.

과거에 비하면 분명한 진전이지만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다. 개정 전엔 법외장애인으로 살아가다 개정 이후에야 법적으로 장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던 이들을 보고, 비장애인이었던 이들이 ‘장애를 얻었다’라고 한다면 다소 이상할 것이다.

더욱이 여전히 정신장애 등록 가능한 진단명 구분을 철폐한 건 아니기에, 진단명에 따라서는 장애가 심해도 법외장애인으로 남는 사례 또한 온전히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도 사정이 다른 건 아니다. 미등록 및 법외 자폐인들의 경우는 물론이고, 등록 이력이 있더라도 사회적으로 ‘중증 발달장애인’의 이미지로 여겨지는 스테레오타입에 맞게 살지 않으면 장애등록 유지를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자체로 ‘못남’을 호소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해 버리는 격일까.

씁쓸하게도 자신의 장애등록을 원하는 자폐 당사자든, 자폐를 가진 자녀의 장애등록을 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사례든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다. 자폐성 장애인으로 법적인 인정과 지원을 받기 위해 시간 및 금전, 체력적으로 험난한 행정소송을 진행하거나 권유받는 많은 사례들이 그것이다.

바라던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렇게 응당 장애 등록이 필요했던 사람이 '비장애인이다가 장애를 얻었다'라고 표현된다면 어색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의학적 진단에 근거한 법적 장애등록은 장애인 인권 면에서 문제점투성이며, 즉시 장애의 사회적 모델과 정체성만을 핵심으로 삼아야 할 것만 같다.

그렇다면 이제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과 정체성에 대해 다뤄보자.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란 ‘차별을 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를 핵심 가치로 둔다고 할 수 있다. 정신적 장애인과 신경다양인을 예시로 든다면, 민감한 감각 등을 비롯한 특성에 대하여 제공되어야 하는 정당한 편의를 사회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어 차별을 받고 장애인이 된다는 것이다.

정체성은 다름 아닌 자신의 장애에 대해 받아들이는 스스로의 정체성이다. 장애 당사자의 권익을 위해 수용해야 하는 관점임에는 분명하다. 장애인으로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 있어서도 자신의 장애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절차는 선행되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차별의 존재를 곧 장애의 기준으로 보는 관점은 장애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질문을 필연적으로 제기하게 된다.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과 같이 신체적/정신적 장애 그 자체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라고 여겨지는 차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경다양성 운동을 제시하면서 여러 사회적 소수자들의 긍지(pride)를 위한 움직임과 연대하며 더 많은 다양성을 수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제시하는 것도 분명 큰 의의가 있다.

그렇다고 이것을 차별받는 계층이 장애 당사자 '그 자체'인 것으로 해석한다면 곤란한 감이 있다. 같지 않고 다르니까 연대를 하는 것이라는 좋은 예시이기도 하다. 장애 정체성의 경우에도 그렇다.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힘든 당사자들을 장애라는 주제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낳을 여지가 있다는 한계가 대표적이다.

결국 장애는 하나의 잣대로 설명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장애를 구성하는 여러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은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수용을 진전시키고, 당사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사자란 무엇일까?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전문의와 연금공단의 판정으로 복지카드를 받아야 당사자인 것도 아니고, 자기 옹호와 권리 운동, 동료 지원에 나설 역량을 갖춘 이들만 당사자가 되는 것 역시 아니다. 장애의 경험자 한 명 한 명의 삶들, 정신적 장애인들마다도 각자 다른 서로의 이야기들은 훌륭한 당사자 서사가 된다.

정신적 장애에 대한 글을 쓸 때 이번 글을 비롯하여 주로 정신(사회심리)장애와 자폐성 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던 감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당사자성이 있는 곳에서 할 말이 더 많기 마련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다음 글에선 꼭 다루고 싶었던, 지능과 지적장애에 대한 글을 힘껏 써 보려 한다. 다름 아닌 장애인의 마땅한 권리와 다양성 관점에서 말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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