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의 불편한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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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7회 작성일 2025-05-16 14:10:06본문
지난 5월 8일 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서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이들의 보호자들에게 실시한 ‘2024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 결과를 공표했다고 하길래 어떤 건지 대략 봤다. 보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엿보게 되는 통계가 여기저기 보인다. 변하지 않은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이 조사가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전체 실태를 나타냈다고 하기엔 부족한 점도 있다.
여전히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 비율이 높으며, 이들의 일자리 질은 괜찮은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평균 임금은 108.7만 원으로 200만 원대인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친다. 100인 이상의 대기업에 소속돼 종사하는 이들의 비율도 낮다. 자폐성 장애인이 계속 특수교육을 받는 비율이 높다는 점 등 이런 현실들은 아직도 바뀌지 않아 답답하다.
이 실태조사에선 장애인 당사자를 존중하지 않는 현실을 엿보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먼저, 지적·자폐성 장애인 의사결정과 관련해서인데, 보통 읽기 그룹의 장애 당사자들 중 52.9%가 직접 결정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이들 당사자의 보호자 응답에선 당사자 관련 주된 의사결정 주체로 보호자는 62.8%, 장애인 본인은 36.7%란 결과가 나왔다.
이걸 보면 보호자는 장애인의 의사결정 능력 존중에 미흡하거나, 능력을 과소평가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짐작은 현실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데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에 그 요인을 꼽을 수 있는데, 여기엔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원 의사결정체계 등의 지원방안 부재, 성년후견 등 대체의사결정체계 팽배가 자리 잡고 있다
사회환경이 장애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환경이다 보니 그걸 생각하며 장애가 있는 자녀를 걱정하는 게 너무도 지나친 나머지 당사자를 과보호하는 것도 이런 결과의 요인일 수 있다. 이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을 텐데, 이렇게 되면, 당사자와 보호자 간에 위계관계가 생기는 건 당연하고, 이는 장애인 당사자 자립의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높다. 이는 보호자가 발달장애인 당사자 혼자서 사는 게 어려울 걸로 생각하는 비율이 70.2%로 나온 통계 결과와도 연관된다.
이런 결과들은 장애인과 그 가족의 욕구를 존중하는 가족지원체계가 아니고, 부양 부담을 오롯이 가족에게 전가하는 현실과도 밀접히 연관된다. 따라서, 장애인과 그 가족의 욕구, 선호를 존중하는 가족지원체계 수립, 당사자 의사를 존중하기 위한 수어, 쉬운 언어, 그림 등의 합리적 편의 제공 등을 통해 척박한 현실을 극복하는 게 필요함을 시사하는 통계 결과들이라 하겠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보호자가 생각하기에, 학교에서 진로·직업교육 효과를 높이거나 전공과에서 강화해야 할 교육에 관한 통계에서도 당사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현실을 엿볼 수 있다. 그 통계 결과에선 '개인의 장애 상태 및 특성 등에 따른 개별화된 교육 및 코칭'이 1위, '발달장애인 적합직무 개발 및 관련 교육과정의 확대'가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장애인의 적성과 취향, 욕구, 선호를 존중하고 이에 따르는 개별화된 교육에 대한 언급은 그 통계엔 나오지 않았다.
보통 발달장애인 적합직무 하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인지능력에 맞는 직무고, 이들의 인지능력이 낮다는 편견 속에, 바리스타와 포장 등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생각하기 쉽다. 물론 바리스타, 포장 같은 게 자신의 적성과 취향이라고 말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이 있다면 이들에겐 할 말이 없겠다. 그런데, 바리스타, 포장 등의 직업이 자신의 욕구, 적성, 선호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의 경우엔 어찌할 건가?
설령 지적장애가 있고, 인지능력이 낮다 하더라도, 대기업과 관련해 중요한 협상과 타협의 영역에서 상당한 능력을 발휘함은 물론, 그런 능력이 필요하게 되는 직종이 그 사람의 적성이자 선호, 취향이라면, 대기업은 그 지적장애인을 고용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 변호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자폐성 장애인이라면, 그 사람은 법원 등 사법부에서 일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에서는 자폐성 장애여성인 헤일리 모스가 실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장애 상태와 특성에 맞는 개별화 교육, 발달장애인 적합직무 및 관련 교육과정의 확대랍시고, 진로·직업교육이 장애인의 욕구, 적성, 선호, 의지 등은 사실상 무시된 채 진행된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이번 통계에서도 부모 등의 보호자들이 진로·직업교육 시 이런 걸 원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니, 그렇게 되면 자녀들의 일자리는 괜찮은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게 될 거다.
미취업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경우에 보호자들이 당사자 취업을 희망하는 일자리와 관련한 통계조사에서도 당사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현실을 엿볼 수 있다. 그 통계 결과에선 ‘장애인 당사자의 적성, 취향에 맞는 일자리’가 1위, ‘장애인 당사자의 능력 수준에 적합한 일자리’가 2위로 나왔다. 관련해 희망 직종은 조립, 포장 등의 제조와 바리스타, 설거지, 청소 등으로 나왔다.
보호자는 장애인 당사자의 적성과 취향에 맞는 일자리를 희망한다고 하지만, 보호자가 생각하는 대로 조립, 포장, 바리스타 등을 당사자들이 과연 자신의 적성으로 생각하며 희망할까? 그런 당사자들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당사자들도 꽤 된다. 그리고 이제까지 당사자의 적성, 선호, 욕구, 취향이 무시된 진로·직업교육을 해왔는데, 당사자의 적성, 취향에 맞는 일자리가 생겼다고 느끼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결국, 미취업 지적·자폐성 장애인에 관련한 보호자의 응답은 이상적인 방향과 현실의 고려사항 등이 혼합돼 나온 결과라고 본다. 물론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알겠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바리스타, 청소, 포장 등의 업무라면, 자신의 욕구, 적성을 무시한다며 반발하는 고학력·고인지·미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적지 않다.
따라서 미취업 지적·자폐성 장애인 관련 통계와 학교에서의 진로·직업교육 및 전공과 교육에 관한 통계 등을 통해 시사하는 바는 이렇다. 진로·직업교육 시 천편일률적이 아닌 장애인의 욕구, 선호를 존중하는 교육으로 전환하고, 대학교와 대학원 등의 고등교육에 대한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는 등 교육에서의 장애인 자기결정권·선택권 증진 정책이 필요함을 말이다.
그래서 통계들을 대략 보긴 했어도 당사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현실을 엿보게 돼 마음이 불편해졌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바리스타, 청소, 포장 등은 대개는 돌봄 요구가 큰 저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된 직종들이다. 학교 이외 교육프로그램 참여 경험과 관련해 참여하고 있거나 참여한 교육프로그램 종류에 기초문해교육, 직업능력교육, 생활기술교육 등이 나오는데 이조차도 대개는 돌봄 요구가 큰 저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된 교육들이다.
결국, 고학력·고인지·미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참여가 사실상 배제된 실태조사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태조사 내용에 장애인 부모단체 등을 통해 조사 참여 독려 등의 홍보를 실시했다고 나오니 말이다. 이들 단체 소속 부모들의 자녀들은 대개 돌봄 요구가 큰 저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인 걸 생각해보면 홍보 방식에서 그런 실태조사가 이미 예견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고학력·고인지·미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겪는 삶이나 고용상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통계 내용들을 발견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직장문화가 비장애 중심이라 특히 고인지·고학력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 특성을 드러내면, 직장 내에서 배제와 차별을 겪기 일쑤다.
그러므로 생존방법으로 자신의 장애 특성을 숨기는 마스킹을 하지만, 심해지면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건강 부분에서 직장과 관련해 우리나라 맥락으로 마스킹과 정신건강 간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실태조사가 있으면 좋은데, 그런 실태조사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이들은 장애 특성이나, 장애로 인한 편견, 입시 위주의 교육체계와 반인권적 학교문화 등으로 인해 학교폭력 대상으로 전락한다. 학교폭력으로 인해 이들의 Inclusive Education 참여는 저해되며, 결국엔 이게 고용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그런 관계로, 학교폭력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실태조사 내용이 필요한데, 역시 이런 실태조사도 찾아볼 수 없다.
만약 고학력·고인지·미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된 실태조사 통계를 내기 어려우면, 포커스그룹 인터뷰 등을 통해 이들의 일과 삶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를 시행하는 등의 차선책을 고민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기에, 전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일과 삶에 대한 현실을 나타내기엔 부족한 통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번 '2024년 발달장애인의 일과 삶 실태조사'는 장애인을 존중하지 않는 현실을 엿보는 건 물론, 고학력·고인지·미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사실상 배제된 실태조사라 말하고 싶다. 그런 실태조사를 통해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 삶의 질을 증진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은 앞으로도 언감생심이겠지.
그러니 고학력·고인지·미등록 지적·자폐성 장애인 배제 없는 실태조사, 교육에서의 장애인 자기결정권·선택권 증진 정책 등이 현재 실태조사에서 보였던 불편한 지점들을 해소하는 길이라 본다. 그럼에도, 국가는 이런 변화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듯해 ‘언제쯤 불편한 지점들이 없는 실태조사가 될 수 있을까?’라고 속에서 질문하게 되어 요즘 마음이 무겁다. 부디 이런 질문이 이후엔 더는 안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